지난 10년간 다양한 초기 딥테크 스타트업 대상 IR Deck 코칭 또는 컨설팅을 수행하면서 한 가지 분명한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기술적으로 뛰어난 창업자들이 투자자들 앞에서 ‘기술’ 자체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정작 그 기술이 창출할 가치와 임팩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최근 소개한 ‘기존 스타트업 성공 공식이 통하지 않는 딥테크 스타트업, 7가지 도전과제와 그 해결책’이라는 포스팅을 통해 소개했던 Loyal이라는 딥테크 스타트업이 Series B 라운드 투자유치 실패 후 직면했던 7가지 도전과 그 해결 과정에서 저는 딥테크 스타트업 IR Deck 작성 관련 많은 인사이트를 받았습니다. 동물 수명 연장 기술을 개발하는 Loyal의 창업자가 직면한 도전과 해결책이 제가 현장에서 경험한 많은 사례와 놀랍도록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SaaS, 마켓플레이스, 커머스 등 일반 스타트업과 달리, 딥테크 스타트업은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술 개발 주기가 길고, 검증 과정이 복잡하며, 성공 여부가 종종 ‘모 아니면 도’의 이진적 결과로 나타납니다. 이런 특성은 기존의 투자 평가 프레임워크로는 제대로 포착되지 않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초기 딥테크 스타트업이 본격적인 투자유치에 앞서 IR Deck을 준비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7가지 핵심 인사이트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인사이트들은 복잡한 기술을 투자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고,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이 창출할 가치에 초점을 맞추는 방법을 제시해줄 것입니다.
딥테크 스타트업 IR Deck 작성을 위한 7가지 핵심 인사이트
1. 기술적 복잡성을 투자자 친화적 언어로 변환하기
딥테크 스타트업의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높은 기술적 복잡성을 비전문가인 투자자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입니다. 양자컴퓨팅, 합성생물학, 첨단 소재과학 등의 분야는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투자자에게 기술을 이해시키는 것은 내 책임이지, 투자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이 성공적인 딥테크 스타트업의 접근법입니다.
기술적 복잡성을 효과적으로 번역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레이어드 설명법 활용하기: 가장 단순한 개념부터 시작해 점점 복잡한 내용으로 확장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엘리베이터 피치 → 5분 설명 → 심층 기술 설명”의 구조로 투자자가 원하는 깊이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 유추와 비유 사용하기: 복잡한 기술 개념을 일상적인 상황에 비유하면 이해도가 크게 높아집니다. “우리의 알고리즘은 숲에서 특정 나무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패턴을 인식해 전체 숲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 시각적 자료 활용하기: 복잡한 개념은 텍스트보다 다이어그램, 플로우차트, 인포그래픽을 통해 전달할 때 더 효과적입니다.
- 기술의 ‘왜’에 집중하기: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보다, ‘왜’ 중요한지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현재 방식보다 10배 빠르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기술을 넘어 가치 중심의 스토리텔링 구축하기
딥테크 스타트업의 흔한 함정은 기술 자체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그 기술이 창출할 실질적인 가치와 임팩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술의 혁신성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들이 진정으로 알고 싶은 것은 “이 기술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가치를 창출하며, 어떻게 수익화될 수 있는가?”입니다.
가치 중심 스토리텔링을 구축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제-해결 프레임워크 활용하기: 기술 설명에 앞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의 심각성과 규모를 명확히 제시합니다. “현재 이 문제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X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 ‘사람’ 중심의 스토리텔링: 기술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립니다. “우리 기술은 암 진단 시간을 3주에서 3일로 단축시켜, 생존율을 20% 높일 수 있습니다.”
- 가치 사슬 명확화하기: 기술이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고, 그 가치가 어떻게 포착되는지 명확한 경로를 제시합니다. “우리 기술은 제조 효율성을 30% 높여 고객의 운영비용을 직접적으로 절감시킵니다.”
- TAM-SAM-SOM을 넘어서기: 단순한 시장 규모를 넘어, 시장의 변화 속도와 방향성, 그리고 왜 지금이 이 기술을 도입할 적기인지 설명합니다.
“기술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투자자에게 어필해야 할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창출할 변화입니다.”
3. 마일스톤 기반 가치 창출 모델 제시하기
딥테크 스타트업의 가치는 사용자 수나 매출과 같은 전통적인 지표가 아닌, 핵심 기술적·비즈니스적 마일스톤의 달성 여부에 크게 의존합니다. Loyal의 사례에서 보듯이, FDA의 효능 승인이라는 하나의 마일스톤이 회사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Series B 투자 유치 시, 첫 번째 시도에서는 데이터가 있음에도 실패했지만, FDA 승인 획득 후 두 번째 시도에서는 첫날에 투자 조건을 받았습니다.” – Celine Halioua
마일스톤 기반 가치 창출 모델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명확한 마일스톤 정의하기: 각 마일스톤이 무엇인지, 어떤 기준으로 달성 여부를 판단할 것인지 객관적으로 정의합니다.
- 마일스톤 달성의 임팩트 정량화하기: 각 마일스톤 달성이 기업 가치, 기술 검증, 시장 진입 가능성 등에 미치는 영향을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합니다.
- 성공 확률(Probability of Success) 제시하기: 각 마일스톤 달성의 현재 가능성과 그 근거를 투명하게 공유합니다. “현재 우리 기술의 핵심 특허 획득 가능성은 약 70%로 평가됩니다. 그 근거는…”
- 마일스톤과 자금 수요 연계하기: 각 마일스톤 달성에 필요한 자금과 시간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프로토타입 검증에는 12개월과 300만 달러가 필요하며, 이는 다음 단계인 파일럿 고객 확보의 전제 조건입니다.”
“딥테크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최종 목표의 실현 가능성이 아니라,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경로의 명확성과 각 단계별 성공 가능성입니다.”
4. 멀티 시나리오 위험 관리 전략 강조하기
딥테크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높은 불확실성과 이진적 위험(binary risk)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술이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규제 승인에 실패하거나, 개발 일정이 크게 지연될 경우 회사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러한 불확실성입니다. 따라서 IR Deck에서는 이러한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효과적인 위험 관리 전략을 제시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중 제품/기술 전략 제시하기: 하나의 접근법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대안적 기술 경로나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주력 제품인 A 외에도, 다른 기술 경로를 활용한 B와 C를 병행 개발하고 있습니다.”
- 지연 및 실패 시나리오 대응 계획 수립하기: 핵심 마일스톤 달성이 지연되거나 실패할 경우의 구체적인 대응 계획을 제시합니다. “기술 A의 검증이 지연될 경우, 우리는 내부 개발 리소스를 B로 전환하는 동시에…”
- 전문가 네트워크 활용하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어떻게 위험 식별과 관리에 기여하는지 보여줍니다. “우리 자문단은 기술, 규제, 시장의 각 영역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어, 다양한 관점에서 위험을 평가합니다.”
- 단계적 검증 과정 설계하기: 대규모 자원을 투입하기 전에 핵심 가정들을 검증할 수 있는 작은 실험들을 설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불확실성은 제거할 수 없지만, 관리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실패를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학습하고 적응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 Celine Halioua
5. 장기적 타임라인과 단계별 자금 조달 계획 수립하기
딥테크 스타트업의 개발 주기는 일반적으로 상당히 깁니다. 새로운 신약이나 첨단 소재, 양자 컴퓨팅 솔루션 등은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수년, 때로는 10년 이상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기적 타임라인은 투자자들에게 도전이 될 수 있으며, 특히 단기적인 성과에 더 익숙한 VC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명확하고 현실적인 장기 로드맵과 그에 맞춘 자금 조달 계획이 필수적입니다.
효과적인 타임라인과 자금 조달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현실적인 타임라인 제시하기: 업계 표준과 유사 사례를 참조하여 현실적인 개발 일정을 제시합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일정은 오히려 신뢰를 잃게 만듭니다.
- 단계별 자금 조달 전략 수립하기: 각 개발 단계에 필요한 자금 규모와 적합한 자금 조달 소스(VC, 정부 지원금, 전략적 파트너십 등)를 구체적으로 계획합니다.
- 자금 효율성 강조하기: 각 단계에서 자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어떤 리소스를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 명확히 합니다.
- 가능한 출구 전략 제시하기: 장기적인 독립 성장 외에, M&A나 라이센싱 등 다양한 출구 시나리오를 고려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장기적 비전은 중요하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단계들과 각 단계에서의 가치 창출 포인트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6. 진입장벽과 경쟁우위 명확화하기
딥테크 스타트업의 중요한 강점 중 하나는 기술적 복잡성이 자연스럽게 형성하는 높은 진입장벽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진입장벽을 단순히 “우리 기술은 복잡합니다”라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투자자들에게 설득력 있는 경쟁우위를 제시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특허 전략 명확화하기: 현재 확보했거나 출원 중인 특허의 범위와 중요성, 그리고 전체 특허 포트폴리오 구축 전략을 설명합니다.
- 기술적 선도 격차 정량화하기: 경쟁사 대비 우리 기술의 우위를 구체적인 지표로 제시합니다. “우리 알고리즘의 정확도는 업계 표준보다 35% 높고, 처리 속도는 3배 빠릅니다.”
- 규제적 장벽 활용하기: FDA 승인, CE 인증 등 규제적 장벽이 어떻게 경쟁 우위로 작용할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 독점적 데이터 및 노하우 강조하기: 특허로 보호되지 않더라도, 오랜 연구 과정에서 축적된 독점적 데이터와 노하우가 어떻게 경쟁 우위로 작용하는지 설명합니다.
- 전문 인력의 깊이 보여주기: 해당 분야의 핵심 전문가들이 팀에 합류한 이유와 그들이 가진 독특한 전문성을 강조합니다.
기술의 복잡성 자체가 아니라, 그 복잡성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했으며 왜 다른 경쟁자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7.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 수립하기
대부분의 딥테크 스타트업, 특히 한국과 같은 제한된 시장 규모를 가진 국가의 스타트업에게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전략이 필수적인 것 같습니다. 첨단 기술 개발에 투입되는 대규모 투자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큰 시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효과적인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을 IR Deck에 표현하기 위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글로벌 시장 기회 정량화하기: 단순한 TAM을 넘어, 지역별 시장 특성과 성장 동력을 구체적으로 분석합니다.
- 단계적 시장 진입 전략 수립하기: 모든 시장에 동시에 진출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시장을 우선순위에 두고,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설명합니다.
- 국제적 규제 환경 대응 전략 마련하기: 각 시장의 규제 환경 차이를 인식하고,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계획을 제시합니다.
- 글로벌 파트너십 및 협력 네트워크 구축하기: 핵심 시장에서의 파트너십 전략과 이러한 파트너십이 시장 진입을 어떻게 가속화할 수 있는지 설명합니다.
딥테크 스타트업은 탄생부터 글로벌 기업이어야 합니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기술 개발의 대규모 투자를 정당화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딥테크 스타트업 IR Deck 준비 실전 체크리스트
딥테크 스타트업의 IR Deck 준비는 단순한 슬라이드 디자인이나 콘텐츠 구성 이상의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복잡한 기술과 긴 개발 주기, 높은 불확실성을 가진 비즈니스의 가치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작업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7가지 핵심 인사이트를 IR Deck 준비에 적용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기술적 복잡성을 투자자 관점에서 이해하기 쉽게 번역했는가?
- 기술 자체보다 그 기술이 창출할 가치와 임팩트에 초점을 맞추었는가?
- 명확한 마일스톤과 각 마일스톤의 가치 창출 임팩트를 제시했는가?
- 위험 관리 및 다중 시나리오 전략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는가?
- 현실적인 장기 로드맵과 단계별 자금 조달 계획을 수립했는가?
- 기술적 우위가 어떻게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로 이어지는지 명확히 했는가?
-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딥테크 스타트업의 IR은 단순한 투자 유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복잡한 기술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그 기술이 가져올 변화를 구체화하는 과정입니다. 기술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기술이 어떻게 실질적인 가치와 임팩트를 창출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투자자들이 우리 비즈니스가 지니고 있는 기술 가치와 시장 기회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